여영운 교육칼럼(2)

‘미·용·고·사’와 ‘나 – 너’ 관계

‘미용고사’란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의 네 단어의 첫 글자를 조합해서 조작적으로 만든 단어입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교원들이, 어른들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키워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진솔했는가? 모범을 보였는가?’ 되물어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 면에서 부족한 것이 많을 것입니다. 내가, 우리 선생님들이 더 잘 교육했다면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좋은 학교에 가거나 더 큰 꿈을 갖고 키웠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합니다.

교육자, 정치인, 종교인, 경제인, 법률가, 언론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범을 보였다면 학생들이 더 바르게 성장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선생님들이 더 애정을 쏟았다면 운동장 모퉁이에서, 교실 한 구석에서 외롭게 혼자 있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을 텐데 정말 미안합니다.

어른들이, 교육자들이 더 관심 있게 애정 어린 눈으로 봤다면 굶주리고 학대 받는 아동이 없을 것인데 정말로 미안합니다. 학생들에게 기초 예절 교육을 더 잘 했다면 교정의 향나무 가지 속에, 화단 후미진 곳에, 계단 모퉁이에, 급식소 가는 길 주변에 음료수 캔, 과자 봉지, 아이스크림 막대기가 불법 군중 집회가 끝난 뒤의 모습처럼 나뒹굴지 않을 텐데 교육을 잘 못해서 정말 미안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교육자들이 우리 학생들을 잘 못 교육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어른들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많은 교육자들은 우리 학생들이 큰 꿈을 갖고 이 꿈을 성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한 게 많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학생 여러분들이 보여줄 진정한 용서는 실천에서 옵니다. 교정에서 만나는 모든 어른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방문객, 선생님들에게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십시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십시오. 기초 기본 예절을 잘 지키십시오. 큰 꿈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모든 것들을 끊임 없이 실천할 때 잘못한 어른들, 교육자를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친구를 돕고 약한 친구를 배려할 때 여러분의 진정한 용서는 완성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승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매일 교정에서 밝은 표정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 야무진 꿈을 착실히 키워가는 열정적인 학생들이 있기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기에, 등굣길에서 재잘거리는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참 고맙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쑥쑥 성장하는 학생들을 볼 때,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들을 볼 때, 친구를 칭찬하고 기초 질서와 예절을 지키는 학생들을 볼 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멋진 여러분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우리 모든 교육자들은 학생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한 것뿐만 아니라 있을 수 있는 잘못까지도 사랑합니다. 여러분들이 반성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철마다 교정에 피는 꽃처럼, 무성한 잎처럼, 노란 은행잎처럼, 옥녀봉 산자락에 양산같이 반쯤 걸린 흰구름처럼 아름답고 싱그럽고 발랄한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의 야무진 꿈, 열정적인 노력, 학생다운 순수하고 화사한 얼굴을 사랑합니다. 점심 후딱 먹고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열심히 공을 차다가 수업종이 울리면 빠르게 뛰어가는 모습을 사랑합니다.

외로운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사랑합니다.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하는 동그란 얼굴, 길쭉한 얼굴, 하얀 얼굴, 노랑색, 초록색, 하늘색 이름표를 단 모두를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지는 두 가지의 태도(관계)는 ‘나 – 그것’으로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 – 너’의 관계로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태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교육의 주체인 교원들이 대상인 학생들을 대할 때 ‘나 – 너’의 인격적 관계로 봐야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 – 너’의 관계는 학생들에게 인격적 책임을 각성시키는 것이고 ‘나 – 그 것’의 관계는 학생들이 수단적.도구적 존재로 규정돼 버리는 비인격적 관계로 교육현장에서 사라져야 할 태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교육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을 ‘나 – 너’의 대등한 인격적 또는 실존적 관계로 보지 않고 ‘나 – 그 것’의 수단적. 도구적 관계 또는 인식론적 관점으로만 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병리 현상의 출발점은 잘못된 교육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비단 교육자들만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지만 수십 년 교육현장에 몸담고 있는 저 또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학생들을 인격적, 실존적 존재로 인식하는 ‘나 – 너’의 관계가 저물어가는 한 해의 교육현장에 ‘미용고사’라는 조작적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미용고사’는 학생들을 인격적이고 실존적 존재인 ‘나 – 너’의 관계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교육적 방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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