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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준의 어민일기 ② ] -대학졸업 후 바로 섬에 돌아간 어업인견내량 어귀 '고개섬'에서 나고 자라
거제매일뉴스 | 승인 2018.11.05 10:47

거제와 통영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이 해협이 견내량이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란 때 견내량에 정박 중인 왜의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로 불러내 학인진 전법으로 섬멸한 해전이 한산도대첩이다. 이 견내량의 진해만쪽 어귀에 자리한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의 '고개섬'과 주변 바다. 이곳이 어업인 명등수산 엄준(52) 대표의 삶의 터전이다.

그는 4가구가 살던 고개섬에서 태어났다. 거제 본섬과 100여m 떨어진 이 섬에서 어떤 땐 스스로 배를 저으며 '거제 뭍'의 초·중학교를 다녔다. 고교는 거제시내,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으나 결혼초기인 서른 살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지금은 섬이 빤히 보이는 오량리 바닷가의 굴 박신장과 인공종묘장이 주된 일터다. 굴양식장은 여전히 고개섬 주변 바다다.

부친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작은 섬에 터를 잡고 홍합 양식을 시작했다. 엄 대표가 1966년생이니 그의 부친은 패류양식이지만 기르는 어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수산업이라고 해봐야 작은 배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어업과 자연산 패류와 해조류를 채취하는 게 고작일 때다.

그 시기 그의 부친은 굴 양식에 뛰어든다. 박정희 대통령이 강력하게 추진하던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따라 굴이 수출품목에 포함된 것을 잘 포착했다.

기르는 어업 선구자 부친 가업 이어

거제 해성고를 졸업한 엄 대표는 동국대 경제학과에 진학한다. 군 복무를 거치고 대학을 졸업할 때 진로를 두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소위 대학 '간판'이 그런대로 괜찮아 취업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자신했다. 취업하면 혼자 먹고사는 데는 무난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2남1녀의 장남으로서 연로한 아버지와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생각하니 혼자만 편하게 살 수 없었다. 그가 장남이지만 늦게 아들을 본 부친은 당시 60세를 훌쩍 넘긴 상태였다.

그리고 당시 바다환경이 조금씩 변하면서 수협과 어촌지도소 등에서 양식굴의 종자를 받는 과정인 자연채묘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예보를 할 단계였다. 연로한 부친 혼자 4㏊의 양식장을 관리하기에 벅찬데다 배로 몇 시간 거리에 떨어진 먼 해역에 가서 채묘를 받아와야 하는 등 양식여건의 변화로 '굴양식집안'은 중대 기로에 섰다. 3년 정도 양식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것 같으면 미리 매각하거나 폐쇄하는 게 그나마 손해를 덜 본다. 하지만 대학 다니는 동생들의 학비 등을 생각하면 집안의 전 재산인 '해상문전옥답'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굴에 대한 자신감·사업 전망 확신도

이에 청년 엄준은 결단을 내리고 미련 없이 귀향한다. 어릴 때부터 굴을 보며 자라 굴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졌다. 또 아버지 세대가 해오던 방식인 각굴 상태로 공장에 납품하는 것보다 자체 박신공장을 차리면 3년 내에 1억 원 이상 벌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들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과 함께 고개섬 생활을 다시 시작한 그는 예상대로 남해안 일대에 불어닥친 굴 채묘파동을 겪는다. 1992년 8월 시작한 채묘에서 종자를 한 톨도 건지지 못했다. 그대로라면 다음해 '양식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었다. 각지를 수소문한 끝에 전남 고흥에서 6월에 생산한 조기산 채묘를 매입했다. 오랫동안 바다와 함께 살아온 어촌 어른들은 그 채묘를 넣어봐야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개섬 전경

엄 대표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전체 양식장 4㏊ 중 2㏊에만 넣기로 했다. 어느 정도만 건져도 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조기산 채묘의 다음해 작황이 좋았다. 반면에 채묘파동으로 통영과 거제, 고성 등 굴 주산지의 전체 생산량은 줄어 굴 시세 또한 유례없이 고가를 보였다. 그는 당시 10㎏들이 굴 한 상자당 가격이 10만 원을 호가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시세가 좋을 때 가격이다.

겨울철 하루 50여명 고용 일자리 창출 기여

그때부터 그의 어촌생활에 탄력이 붙는다. 4㏊이던 양식장은 굴 13㏊와 피조개 2㏊ 등으로 늘었다. 또 자체 굴 박신시설을 갖추고, 2000년 어류종묘생산시설을 사들여 굴 인공종묘시설로 교체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사업을 다각화했다. 지금은 전체 사업장 수입 가운데 굴 인공종묘 분야가 절반정도를 차지한다.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지역 수산업계와 어촌에서 그를 불러냈다. 당시 어촌에는 젊은이가 별로 없는데다 학사 수산업경영인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상당 규모의 사업장을 경영하려니 그 또한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촌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그는 IMF 이후 젊은 층이 어촌에 유입되면서 점차 활동영역을 넓혀간다. 30대에 거제시수산업경영인연합회장을 맡아 7년간 봉사했다. 굴수협 대의원을 거쳐 3년 임기의 감사를 연임했다. 거제수협에도 대의원을 거쳐 현재 감사를 맡고 있다. 전국 어업인후계자들의 대표 단체인 한국수산업경영인연합회 감사와 경남자율관리어업공동체 거제시위원장도 맡고 있다.

수산 분야 사업과 기술 및 단체활동에 대한 평가를 받아 해양수산분야 신지식인에 선정되고, 한국농어촌청소년 대상, 경상남도 자랑스런 농어민상을 수상했다. 올해 어업인의 날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의 사업장은 10월부터 본격적인 굴 수확에 들어갔다. 다음해 4월까지 이어지는 굴 채취와 박신에는 하루에 50여명이 동원된다. "겨울철이면 바다 가까이 농어촌에는 굴과 연관돼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한 젊은이의 귀촌 결정이 지역 고용창출과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저서 “어민의 행복을 꿈꾸며” 중에서

엄준(52) 대표는 작은 체구지만, 구릿빛 피부와 다부진 몸매. 영락없는 바다 사나이다. 하지만 단순한 뱃사람이 아니다. 15㏊의 해상 패류양식장과 6600여㎡의 육상 굴 인공종묘 및 어장부속 시설을 가진 수산업계에서 잘 나가는 경영인이다. 그것도 90년대 초반 당시로는 아주 드물게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어촌에 정착한 학사 어업인으로 거제시 사등면 오량리에서 '명등수산'을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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