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 보내도

                  정귀숙

뜨겁게 삶을 지탱하던

기억

그 기억이

길바닥에 뒹굴고 있다

선홍빛 핏물에 젖어

바스락거리는

숭숭 뚫린 영혼이 불을 지피는

가슴 뛰는 가을

되돌아보고 싶은 추억 함께

저울질하는 남겨진 시간

너를 떠나보내도

아직 나는 너를 떠나지 못한다

<감상>

가을에 대하여 많은 서술은 없었지만, 아픈 계절의 감상이 읽는 이의 가슴에 진하게 다가온다. “선홍빛 핏물”이라고 강열하게 표현한 모습에서 우리는 시인의 젊은 열망이 느낄 수 있다. 기억 속에서 추억을 낚아 올려 “지나간 추억”과 조심스럽게 “남겨진 시간”을 대비시켜 가늠하고, 마지막 연에서 “너를 떠나보내도 / 아직 나는 너를 떠나지 못한다” 역시 젊은 열망의 모습이다. 계절을, 추억을, 과거의 기억을 시인은 떠나보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아니 떠나보낼 의사가 없어 보인다.

첫 연에서 “기억 / 그 기억이”로 구태여 행을 바꾸어 한 호흡을 마련한 것은 강조를 위함이나, 시인 특유의 내재된 음률적 소양과 내공을 느끼게 하고, 두 번째 연에서의 황홀한 색감과 촉감, 3, 4연에서의 시인의 독백인 듯 잔잔한 말로 마무리하는 솜씨는 몇 번 되읽어 볼만한 작품이다. - 김용호

정귀숙 프로필

▪ <문장21> 시 신인상 (2017)

▪ 북시티 문학작품상 (2021, 「너를 떠나도」외)

▪ 한국문협 회원

▪ 한국문협 거제지부 사무국장

▪ 청마기념사업회 이사

▪ 글향 문학회 사무국장

거제매일뉴스  webmaster@gjmaeil.com

<저작권자 © 거제매일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