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의 동백

한 규 철

종일을 까맣게 보낸

선창 옆 촛대바위

드리어진 석양에 홍시처럼 붉어있고

비릿한 갯내음 들물 따라 밀려오면

이제는 나갔던 배

집으로 돌아올 때

비렁끝 돌아드는 아버지의 작은 배

노 젖는 소리 삐그덕

아픈 허리 삐그덕

작년 겨울 손등 부스럼

또 다시 도져나서

잉걸불에 비쳐서 쪼여도 보고

김 펄펄 소죽물에 담그기도 하면서

독한 겨울 견디려 다잡는 마음인데

동백은 발 동동 긴 밤을 지새어서

눈 속에서 피어난다

아…… 붉은 꽃

<감상>

‘낙도’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다. 그런 낙도에서 태어나 육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떠할까! 가슴의 복판에 덩그러니 고향이라는 섬을 모셔다가 평생 어루만지며 살아가는 것일까! 이 시를 보면 틀림없이 그러하다.

그 섬의 동백을 노래하는 것으로 봐서 단박에 남해안의 섬인 줄을 알겠다. 시는 아련한 장면들, 뇌리에 깊숙이 박혀있던 사연들을 언어로 재구성하여 펼쳐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언어는 수많은 말들로 되어 있다하더라도 그 가슴 깊은 장면들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근, 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는 시인들은 그 언어의 한계와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 문예사조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인의 가슴 속에 깊게 새겨진 사연과 장면을 꺼내어 노래하려니 목이 메여 제대로 노래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다. 그러나 역으로 오히려 목 메이게 부르는 노래가 더 사람의 가슴을 울리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가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비렁끝은 섬의 절벽, 벼랑의 끝이다. 석양을 등에 업고 아버지의 배가 삐그덕거리며 선창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떠올린다. 시인은 연로하신 아버지의 허리를 생각하고, 겨울마다 도지던 부스럼의 아픔도 이제는 정겨운 추억이 되었다. 소죽을 끓이던 아궁이에 말려도 보고, 소죽물을 떠내어 담가 보았던 기억도.

시는 노을이 피는 저녁으로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 밤새 내린 눈에도 붉게 피어난 동백으로 끝내고 있다. 시들기도 전에 목을 스스로 잘라 짧은 청춘, 뚝뚝 떨어지는 꽃이여. 육지에서 먼, 낙도의 동백은 더욱 때 묻지 아니하고 선연히 붉을 것이다. 동백은 많은 시에서 즐겨 등장하는 꽃이지만, 이 시의 동백이 더욱 붉게 여겨지는 것은 시인의 가슴 속에서 피고 지기를 수없이 한 까닭 때문일 것이다. <김용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