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박용래(1925~1980)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에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에 바람은 잠을 자리.

<감상평>

집 떠나 객지로 나선 자식들에 의해 가장 간절해지는 이름, 고향.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 눈 덮인 마늘밭을 지나, 달빛 쌓인 고향집 추녀 밑에 서면 바람마저 잠든 마당귀의 처연한 고요에 마음이 울컥하지 않을 수 없겠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눈물을 부른다고 했던가. 한 획의 낭비도 없는 절제된 감성과 말을 어루만지는 시인의 정밀하고 민감한 감각이 우리를 달빛 쌓인 고향집 추녀 밑에 세우고 고드름처럼 눈물을 떨구게 한다.

<평자 프로필>

- 이름: 황현중

- 경력: 평론가·시인,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제6회 북한강문학상 수상, 제9회 효석문학상 수상, 시집 『조용히 웃는다』(2015, 그림과 책), 『너를 흔드는 파문이 좋은 거야』(2016, 그림과 책)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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